[앵커]
전 세계 경제를 혼란에 밀어 넣은 러시아는 이미 넉 달 넘게 우크라이나 침공을 멈추지 않고 있지요.
그런데 아무리 굵직한 경제 제재를 가해도 러시아 경제는 오히려 살아나고 있습니다.
황당한 제재의 역설은 대체 왜 발생한 걸까요.
세계를 보다, 권갑구 기자입니다.
[기자]
시진핑 중국 주석의 주도로 열린 브릭스 화상 정상회의.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자리했습니다.
나흘 뒤 모디 총리는 G7 정상 회의에 초청돼 서방 정상들과도 한 자리에 섰습니다.
양쪽 모두에 발을 담근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혜국으로 꼽힙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국에게 재정 지원 약속 등 러브콜을 받는 한편, 서방 수출이 막힌 러시아산 원유를 싼값에 사들이고 있습니다.
중국도 지난달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을 전 달 대비 약 28% 늘리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원유 수출 차단에 나선 서방의 제재를 인도와 중국이 무력화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이 덕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폭락했던 루블화 가치가 최근 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1월에서 5월 사이 러시아의 경상수지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증가하는 등 오히려 경제지표가 호전됐습니다.
러시아는 도리어 세계 최대 곡창지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곡물도 가로챘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 우크라이나 대통령(지난달 29일)]
"러시아는 기아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을 안정시켰던 우크라이나 곡물 공급을 막았습니다."
대러 원유 수출 제재에 따른 원유 공급량 감소,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감소는 러시아가 아니라 다른 약소국들을 경제 위기 상황에 몰아넣었습니다.
[라닐 위크라마싱하 / 스리랑카 총리(지난달 22일)]
"우리 경제는 완전 붕괴에 직면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마주한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름값 상승과 식량난은 전세계로 번지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파키스탄을 비롯해 영국과 지구 반대편 에콰도르까지 반정부 시위도 부추겼습니다.
팬데믹과 겹치며 대러 제재의 역습은 미국에도 악재가 됐습니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와 개인소비지출 지수는 모두 40여 년 만에 최고 상승 폭을 보였습니다.
유럽 물가 역시 1997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 제한 조치 등 에너지 무기화도 가속화할 태세입니다.
[엄구호 /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소장]
"유럽이 현재로는 러시아 에너지를 수입하지 않고는 좀 버티기가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에 제재 수단을 동원하기 어렵다는 데에 좀 고민이 있을 것 같습니다."
G7 국가들은 에너지 가격 안정과 러시아 돈줄 조이기를 위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로 응수했습니다.
[조 바이든 / 미국 대통령(지난달 30일)]
"푸틴의 수입 감소를 위해 러시아 석유 가격 상한선의 세부 사항을 연구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러시아가 원유 감산에 나설 경우 공급량 감소, 기름값 인상, 러시아 이익 증가 등 대러 제재의 역설이 가중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를 보다 권갑구입니다.
영상취재 : 한일웅
영상편집 : 이혜리
권갑구 기자 nine@donga.com